영화 <애프터 썬>은 우울장애 대상자를 출연시키는 여느 영화처럼 자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또한 특징적인 우울장애 대상자의 행동이 단번에 관찰되지 않는다. 관객은 그저 ‘캘럼’의 모습이 어쩐지 아슬아슬해 보인다고 느낄 뿐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몇 명이 우울장애 대상자에 속할까? 3명인지, 5명인지, 혹은 아무도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대상자 스스로 알아채기 어려운 증상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조차 인식하기 어려운데, 타인이 타인의 감정에 얼마나 긴밀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애프터 썬>은 그런 면에서 현실적인 영화라고 느껴진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집중하지 않는 이상 그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어쩌면 집중한다고 해도 영영 깨달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철저히 ‘캘럼’의 딸 ‘소피’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그조차도 ‘소피’가 11살에 ‘캘럼’과 함께 했던 튀르키예 여행에 대한 회상이다. 영화를 한 번 보았을 때 관객은 ‘캘럼’이 위태로워 보인다고 느끼지만 그의 감정이 정확히 어떠하다고 묘사하기 어렵다. 슬픈 현악기 음악에 맞춰 웃는 ‘캘럼’을 보고 관객은 어쩐지 슬퍼 보인다고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캘럼은 왜 위태로워 보이는가’에 집중해 두 번, 세 번 시청한다면 이 영화는 타인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일 계기가 될 수 있다.
영화 <애프터 썬>은 캠코더에 비친 아빠 ‘캘럼’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딸 ‘소피’의 캠코더는 공항에서 자신을 배웅하는 아빠를 비춘다. 그는 웃고 있다. ‘소피’의 시선 속 아빠는 티없이 맑게 웃을 뿐이다. 곧 화면은 빛이 번쩍이며 춤을 추는 ‘캘럼’과 나이가 든 ‘소피’의 현재 모습으로 전환된다.
이 부녀는 사이 좋게 튀르키예에 방문했다. ‘캘럼’은 ‘소피’의 엄마와 이혼한 상태이지만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캘럼’과 ‘소피’는 튀르키예의 관광버스에서도 장난을 곧잘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소피’는 11살이 막 지났고,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은 시시하다고 느끼며 어른의 것에 속하는 이성 간 스킨십에 부쩍이나 관심이 늘었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소피’는 침대에 엎어져 잠이 들지만 ‘캘럼’은 그럴 수 없었다. 방이 잘못 예약되었기 때문이다. ‘캘럼’은 시작부터 여행이 꼬였다고 느낀다. ‘캘럼’은 베란다에서 담배를 태우지만 그의 뒷모습만 화면에 비칠 뿐 표정을 볼 수 없다. 시간은 새벽 세 시를 넘어간다. 이튿날 역시 ‘캘럼’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소피’가 찍은 캠코더를 돌려 본다.
‘캘럼’은 한쪽 팔에 깁스를 한 채 등장하여 그가 왜 다쳤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소피’가 아빠에게 다쳤을 때 아팠는지, 어떻게 하다가 다쳤는지 물어보지만 ‘캘럼’은 얼버무릴 뿐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다. ‘소피’가 방에서 잡지를 보는 동안 ‘캘럼’은 화장실에 앉아 작은 가위로 직접 깁스를 자른다. 관객은 ‘캘럼’이 자칫 가위로 팔을 찌를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소피’가 있는 방은 밝고 따뜻한 색으로 비추어지는 데 반해 ‘캘럼’의 화장실은 어둡고 파란 화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등장인물의 감정을 여러 방식으로 드러낸다. 가장 알아차리기 쉬운 형태는 대사이지만 때로는 물건이 될 수도, 색이 될 수도 있다. 노란색과 같은 밝고 따뜻한 색은 등장인물의 기쁨을 나타낼 수 있지만, 파란색은 우울한 감정, 슬픔을 드러내곤 한다. 그렇다면 ‘캘럼’은 여행 중에도 우울했던 걸까?
영화는 철저히 ‘소피’의 회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왜곡된 구석이 있다. 왜곡의 가능성은 영화 속 대사에서 발견된다. ‘캘럼’은 런던에 집을 사면 ‘소피’의 방을 만들어 줄 예정인데, 어떤 색으로 방을 칠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소피’는 노란색을 칠하고 싶다고 대답하며 노란색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라고 답한다. ‘소피’는 아빠와의 튀르키예 여행을 즐거웠다고 기억하고 있고 노란색을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소피’의 회상인 영화 속에는 노란색이 자주 등장한다. 호텔에서 만난 언니가 선물한 팔찌와 호텔 직원의 티셔츠가 노란색인 식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튀르키예 여행을 갔을 당시 아빠의 나이가 된 ‘소피’의 추측과 11살의 ‘소피’의 기억이 뒤섞는다. 어른이 된 딸이 아빠의 감정을 감히 추측해 보는 것이다. ‘소피’ 자신이 우울한 것 같다고 말했을 때 화장실에서 깁스를 풀고 있던 ‘캘럼’의 표정은 대표적인 어른이 된 ‘소피’의 추측이다. 실제로는 아빠의 얼굴을 살피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어서 돌아봤을 때 아빠는 그런 표정을 지었으리라고.
‘캘럼’의 상태는 영화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된다. 호신술을 가르쳐 주던 ‘캘럼’은 ‘소피’가 장난을 치자 어쩌면 과하게 화를 낸다든지, “40살의 모습이 상상이 안 돼요. 서른이 되었을 때도 깜짝 놀랐어요.”라는 대사로 말이다. 다이버 자격증이 없는데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이빙해 한참 동안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 ‘캘럼’의 심정을 관객은 그저 추측할 뿐이다. 영영 올라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덜컥 겁이 날 정도로 ‘캘럼’은 위태롭다.
담배는 절대 피우지 말라는 ‘캘럼’에게 “할머니는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만나지 않아?”하고 묻는 ‘소피’를 보고 우리는 ‘캘럼’의 가정환경을 추측할 수 있다. 어쩐지 씁쓸한 표정을 한 ‘캘럼’의 11살 생일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라든지, 고향인 스코틀랜드에 자주 가지 않는다며 자신은 소속감을 느낀 적 없다고 묘사하는 장면도 있다. 스쿠버 다이빙 강사가 자신은 여행을 많이 했지만 결국 고향이 그리워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과는 상반된다. 대조적인 대사는 ‘캘럼’의 무력감을 극대화한다.
‘캘럼’은 소피와의 여행에서도 위태로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난간 위에 두 발을 딛고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처럼 서있는 ‘캘럼’, ‘소피’가 ‘캘럼’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어 호텔 파티에서 노래를 신청했을 때 자신의 딸에게 과하게 화내는 모습도. ‘소피’와 싸웠다고 해서 11살 난 딸을 두고 먼저 방에 들어가는 모습은 썩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어쩌면 ‘캘럼’은 자신조차 돌보기 힘들었던 건 아닐까. 결국 ‘캘럼’은 ‘소피’를 두고 새벽 바다에 들어가서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어쨌든 부녀는 화해하고, ‘소피’가 아빠를 위해 서른한 살 생일 축하 노래를 관광객들과 함께 불러준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혼자 방 안에서 흐느끼는 ‘캘럼’의 뒷모습과 교차된다. ‘캘럼’의 침대 아래에는 ‘소피’에게 쓴 마지막 엽서(우리는 이 엽서를 마지막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가 클로즈업 된다. ‘I love you very much. Never forget that.’ (너를 매우 사랑해, 그것은 절대 잊지 마.)
잔잔한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꼽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나는 <애프터 썬>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Queen과 David Bowie가 함께 부른 <Under Pressure>에 맞춰 두 사람이 춤을 추던 씬이라 하고 싶다. Insnity laughs under pressure we’re breaking. Can’t we give ourselves one more chance? Why can’t we give love that one more chance? (광기가 웃고 압박 아래서 우리는 부서지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없는 걸까? 왜 우리는 사랑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 걸까?)
영화는 첫 장면과 이어지며 끝난다. 영화가 시작할 때 ‘소피’의 시선 속 ‘캘럼’은 분명 해맑게 웃으며 ‘소피’를 배웅해 주었다. 마지막 장면, 어른이 된 ‘소피’의 추측 속 ‘캘럼’은 쓸쓸한 얼굴로 ‘소피’의 얼굴을 캠코더에 담는다. 그러고 ‘캘럼’은 공항을 빠져나가는데, ‘소피’의 꿈 속이다. ‘소피’는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여행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캘럼’이 빠져나간 공항 문은 굳게 닫히고 다시는 열리지 않는다.
영화만 보았을 때 우리는 그저 ‘캘럼’이 우울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애프터 썬>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서 제목의 유래를 유추할 수 있다. 감독인 샬롯 웰스는 실제로 영화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스스로 아빠와의 기억을 회상한 영화라고 말하였다. 샬롯 웰스가 16살일 때 실제 감독의 아빠는 생을 마감했다.
<애프터 썬>의 제목은 우리에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애프터 썬은 썬크림처럼 해에 살이 타지 않게 바르는 것이 아니라 햇볕에 타버린 살을 회복시키기 위해 바르는 제품이다. 소중한 사람의 상실은 큰 흔적을 남기고 우리는 애프터 썬처럼 타버린 삶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상실의 감정은 썬크림을 발라 예방할 수 없으니 애프터 썬을 발라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아빠의 나이가 된 ‘소피’가 튀르키예 여행을 회상하며 아빠의 심정을 추측하는 것처럼. 그것이 비록 왜곡된 기억을 더듬으며 아버지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행위일지언정, 어른이 된 ‘소피’에게 위로를 줄 순 있다. <Under Pressure>의 가사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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